유토피아

2021-07-20by minkyu5분 읽기

토머스 모어의 *"유토피아"*는 단순히 어떤 이상 사회를 상상해 그려낸 작품이라기보다, 16세기 영국 사회를 비판적으로 비추는 거울 같은 글이었다. 표면적으로는 가상의 섬나라 유토피아를 묘사하는 형식이지만, 그 안에 들어 있는 제도와 생활 방식은 모어가 자신의 시대를 바라보며 가졌던 문제의식과 불만을 우회적으로 드러내는 장치였다.

당시 영국은 급격한 사회 변동기를 겪고 있었다. 무엇보다 인클로저 운동이 커다란 문제였다. 귀족과 지주들이 목축업에서 이익을 얻기 위해 농민들을 내쫓고 땅을 목초지로 바꾸는 과정이 전국적으로 벌어졌다. 그 결과 농민들은 삶의 터전을 잃고 도시로 몰려들었지만, 마땅한 일자리는 없었다. 도시의 빈민들은 생존을 위해 구걸하거나 범죄에 내몰렸고, 그에 대한 국가의 대응은 빈곤의 원인을 해결하기보다 강력한 처벌이었다. 모어는 실제로 "양이 사람을 잡아먹는다"는 말로 이 문제를 비판한 적이 있는데, *"유토피아"*에 등장하는 사유재산 철폐와 공동 노동 체제는 바로 이 현실을 비판하는 대안적 상상처럼 읽힌다. 유토피아에서는 누구나 일정한 노동을 분담하며, 그 노동은 하루 6시간 정도로 제한된다. 그 대신 여가 시간은 교육과 자기 수양에 쓰인다. 이는 인클로저로 노동에서 배제된 농민들과, 도시 빈민의 비참한 현실을 의식하지 않고서는 나오기 힘든 구상이다.

법과 정치 제도에 대한 묘사 또한 당시 영국 상황을 염두에 두지 않고는 이해하기 어렵다. 유토피아의 법은 단순하고 명확하다. 복잡한 법률이나 변호사가 필요하지 않을 정도로 체계가 단순하며, 지도자의 권력은 일정하게 제한된다. 반면 실제 16세기 영국은 귀족과 법률가 집단이 권력을 독점했고, 법은 종종 서민에게 불리하게 작동했다. 모어 자신이 법조인이자 국왕의 고문으로 일하며 이런 불평등을 직접 보았기 때문에, 유토피아의 단순한 법 질서는 현실의 부패한 법 체계에 대한 간접적인 비판으로 읽힌다.

종교 문제도 중요하다. 유토피아에서는 다양한 종교가 공존할 수 있도록 허용된다. 누구든 자신이 믿고 싶은 신을 믿을 자유가 있다. 그러나 무신론은 공동체의 도덕과 질서를 무너뜨릴 수 있다는 이유로 제한된다. 이는 종교적 관용을 강조하면서도, 그 한계 또한 분명히 드러낸다. 16세기 초 유럽은 종교 개혁의 불길이 번지던 시기였고, 영국 내에서도 가톨릭과 새로운 사상이 충돌하기 시작했다. 모어는 가톨릭 신앙을 지켰던 인물이었지만, 이 작품에서는 다양한 종교가 공존할 수 있다는 이상을 그려낸다. 다만 무신론을 배제한 것은, 그의 한계이자 동시에 당시 사회 분위기를 반영하는 부분이다.

또 하나 주목할 점은 유토피아의 재산과 소비 개념이다. 이 섬에서는 금과 은이 특별한 가치를 갖지 않는다. 심지어 노예의 족쇄를 금으로 만들거나, 화장실 기구를 은으로 만들어 귀금속의 상징적 가치를 무너뜨린다. 이는 당시 유럽 사회, 특히 상업과 식민지 개척으로 급속히 돈의 힘이 커지던 현실을 정면으로 풍자한 부분이다. 모어가 살던 시대는 돈이 귀족과 권력자의 새로운 무기가 되고, 사회적 위계질서를 더 공고히 하던 시기였다. 그에 대한 반감이 이렇게 극단적인 묘사로 표현된 것이다.

유토피아의 정치 제도 역시 흥미롭다. 지도자는 선출되지만, 권력은 제한되어 있으며 중요한 결정은 집단적으로 논의된다. 이는 왕권 강화로 절대 권력이 커져 가던 영국 사회를 비판하는 장치로 보인다. 모어가 국왕 헨리 8세의 신임을 받으며 고문으로 일했음에도 불구하고, 작품 속에서는 권력이 한 사람에게 집중되는 것을 경계하고 있다는 점이 흥미롭다.

이 모든 묘사를 종합해 보면, *"유토피아"*는 완벽한 사회의 설계도라기보다는, 모어가 살던 시대의 문제를 정면으로 드러내고 질문을 던지는 장치였다. 인클로저로 인한 농민의 몰락, 법과 권력의 불평등, 종교 갈등, 돈과 재산의 불공정한 분배 등 현실에서 드러난 문제들을 뒤집어, 가상의 섬에서 반대되는 제도로 풀어낸 것이다.

지금의 눈으로 보자면, 유토피아의 제도들이 실제로 가능할까 하는 의문은 여전히 크다. 사유재산을 완전히 없애는 것이 인간의 자유를 억압하지 않을까, 모든 사람이 같은 노동을 해야 한다는 것이 진정한 자율성과 조화를 이룰 수 있을까 하는 질문이 따라온다. 그러나 중요한 건 모어가 현실적으로 가능하다고 확신했느냐가 아니다. 오히려 그는 이런 상상을 통해 당시 현실을 다시 생각하게 만들려 했던 것 같다.

나는 이 내용을 읽으면서, 단순히 이상 사회의 꿈을 본다기보다, "지금 우리가 당연하다고 믿는 제도들이 정말 옳은 것일까?"라는 질문을 받았다. 유토피아 섬은 현실에서는 존재하지 않는 공간이지만, 그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은 16세기 영국 사회와 끊임없이 대조된다. 그래서 이 책은 오히려 공상이라기보다는 현실 비판서에 가깝게 느껴진다.

결국 *"유토피아"*는 16세기 영국의 혼란 속에서 탄생한 절박한 상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