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 선생님 최XX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은 근대 경제학의 출발점 같은 책이라고들 한다. 나도 이 책을 완전히 다 읽었다기보다는, 부분적으로 접하고, 또 여러 해석을 통해 알게 된 경우가 많았다. 내용은 방대하고 다소 고전적인 문체로 서술되어 있어 솔직히 읽는 데 쉽지 않다. 그런데도 사람들이 이 책을 계속 이야기하는 이유는, 단순히 경제를 설명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인간 사회의 질서와 원리에 대한 근본적인 시각을 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내가 이 책을 떠올리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건 중학교 때 기술 선생님이다. 그분은 스스로 강력한 애덤 스미스 찬양론자에 가까웠다. 수업 시간에 『국부론』을 본격적으로 다루진 않았지만, '보이지 않는 손' 이야기를 자주 했다. 시장에서 사람들은 자기 이익을 위해 행동하지만, 그 결과가 의도하지 않게 사회 전체의 이익으로 이어진다는 설명이었다. 당시에는 꽤 신기하게 들렸다. 사람들이 서로 돕지 않아도, 오히려 각자 이익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조화가 생긴다는 발상은 청소년이 보기엔 꽤 역설적이었다.
책의 큰 줄기를 따라가 보면, 스미스는 사회의 부가 어디에서 오는지를 설명하려 했다. 그는 부의 원천을 단순히 금이나 은 같은 귀금속에서 찾지 않고, 인간의 노동에서 찾았다. 노동이야말로 가치를 만들어내는 진짜 원천이고, 생산성이 높아질 때 사회 전체가 더 풍요로워진다고 보았다. 여기서 그는 노동 분업을 중요한 요인으로 제시했다. 예컨대 핀 공장을 예로 들며, 혼자서 모든 과정을 하면 생산량이 미미하지만, 공정을 나눠 맡으면 훨씬 많은 핀을 만들 수 있다고 했다. 이런 설명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교과서적 예시로 회자된다.
그러나 그가 말한 것은 단순히 효율성만은 아니었다. 사람들은 서로 필요하기 때문에 교환을 하고, 시장이 그 교환을 조정하는 장치로 작동한다는 것이었다. 국가가 모든 걸 직접 통제하기보다, 시장이 자율적으로 흘러가도록 맡길 때 더 큰 조화가 이루어진다는 믿음이 여기서 비롯된다. 이게 흔히 말하는 '보이지 않는 손'이다. 내 기술 선생님은 이 부분을 특히 강조했는데, 아마도 국가 개입보다는 개인의 자유를 더 소중히 여겼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스미스의 생각을 단순히 '시장을 내버려두면 다 잘 된다'라는 말로만 받아들이는 건 조금 위험한 단순화 같다. "국부론"에는 국가의 역할에 대한 언급도 분명히 들어 있다. 시장이 모든 걸 해결할 수 없을 때, 특히 치안, 국방, 공공 교육 같은 분야는 국가가 맡아야 한다고 스미스는 분명히 말했다. 이런 점은 종종 간과되는데, 실제 책을 보면 그의 시각이 지금 흔히 알려진 것보다 훨씬 복합적이라는 걸 알 수 있다.
분명히 느낀 건, 이 책이 단순히 경제학 이론서가 아니라 인간 사회의 질서에 대한 철학적 탐구라는 점이다. 사람들이 각자 이익을 좇으면서도 동시에 서로 얽혀 있다는 사실, 그리고 그 얽힘 속에서 사회 전체가 움직인다는 관점은 단순하면서도 깊은 통찰처럼 다가왔다.
결국 "국부론"을 떠올리면 나는 경제학의 고전이라기보다, 중학교 때 기술 선생님이 했던 이야기부터 먼저 생각난다. 그는 애덤 스미스를 마치 인류의 위대한 구원자처럼 이야기했는데, 지금 돌아보면 그 열정이 조금은 과장되었더라도 그 덕분에 어린 나에게 "경제란 무엇인가, 시장이란 무엇인가"를 처음 질문해 보게 된 계기가 되었다. 어쩌면 스미스의 위대함은 바로 그런 질문을 던지게 만드는 데 있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