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이상학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이상학"은 제목부터 조금 낯설었다. 사실 이 말이 거창한 뜻에서 시작된 것도 아니고, 그냥 물리학 뒤에 이어진 글이라는 이유로 붙은 이름이라고 한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걸 두고 "더 근본적인 걸 다루는 내용"이라고 받아들였고, 나도 자연스럽게 그런 느낌으로 읽게 되었다.
내용을 따라가면서 가장 크게 다가온 건, 아리스토텔레스가 세계를 바라보는 시선이었다. 그는 존재라는 게 단순히 한 가지로 설명될 수 없다고 말한다. 사물 자체로도 존재할 수 있고, 재료와 모양이 합쳐진 것으로도 설명할 수 있고, 아직은 가능성으로만 있다가 현실로 드러나는 방식으로도 이해할 수 있다고 했다. 사실 이런 구분은 읽을 때는 추상적으로만 다가왔는데, 조금 생각해보면 우리가 평소에 쓰는 말에도 남아 있는 것 같았다. "될 수 있다"와 "이미 되었다"를 구분하는 건 아주 일상적인 사고방식이니까.
또 한 가지 인상 깊었던 건 세계를 설명하는 원인을 네 가지로 나눈 부분이었다. 재료, 모양, 움직이는 힘, 그리고 목적. 처음에는 이런 구분이 너무 인위적인 것 같아 잘 와닿지 않았다. 그런데 건물을 예로 들어 보니 이해가 좀 됐다. 벽돌 같은 재료가 있고, 설계라는 모양이 있고, 그것을 짓는 사람이 힘이고, 마지막으로 사람이 거주한다는 목적이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보니 단순히 철학적인 개념이라기보다,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에도 적용할 수 있는 틀처럼 느껴졌다.
그렇지만 솔직히 말하면 내용 전체가 쉽진 않았다. 반복되는 설명도 많고, 추상적인 부분은 아무리 읽어도 잘 안 잡혔다. 그래서 내가 제대로 이해했는지 확신이 서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읽게 된 건, "존재란 무엇인가"라는 단순하지만 큰 질문을 이렇게 진지하게 붙잡고 있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나에게 "형이상학"은 명확한 답을 주기보다는 질문 자체를 다시 바라보게 하는 내용이었다. 왜 세상은 아무것도 없는 게 아니라 무언가가 있는 걸까. 이 물음을 아리스토텔레스는 특별히 신비하게 설명하지 않고, 차근차근 원리를 따져가며 풀어내려 했다. 물론 완벽하진 않았고, 지금 기준에서 보면 이해하기 어려운 대목도 많다. 하지만 그런 시도가 있었기에 이후 철학이 이어질 수 있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나는 이 내용을 다 알았다고 할 수는 없다. 여전히 어렵고, 여전히 많은 부분은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 어려움 속에서 오히려 친근함도 느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붙잡았던 고민들이 지금 우리가 하는 고민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걸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내용은 완벽하게 설명되진 않아도, 계속 생각해볼 만한 가치를 가진다고 느꼈다.